기후변화 탓만은 아니다…러브버그 확산 뒤엔 생태계 균형 붕괴도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 하얀 벽면에 검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두 마리가 짝을 이루고 앉아 있으며, 일부는 공중을 날고 있다. 몸길이 1cm도 되지 않는 이 곤충들은 등 쪽에 붉은 점을 지닌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다. 불쾌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이 곤충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서울 곳곳에서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시민들의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 6월 25일 양천구 목동에서 러브버그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양천구는 2023년까지만 해도 이 곤충이 자주 보이지 않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2024년 6월 들어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대규모 출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조사에 참여한 박선재 연구관은 “6월 초부터 현장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개체 수가 확연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성북구, 은평구 등에서도 러브버그 출현이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은평구는 2022년 대발생의 진원지였다. 당시부터 서울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서식지를 넓히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이들의 무리 비행을 불쾌하게 여기지만, 사실 러브버그는 유충 시기에 낙엽을 분해하고, 성충이 되면 꽃가루받이를 돕는 생태계의 유익한 곤충이다.
러브버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22년 대발생 이후 시민참여형 플랫폼 ‘네이처링’을 기반으로 시작됐다. 해당 플랫폼에 기록된 관찰 사례를 바탕으로 국립생물자원관은 양천구를 주요 조사 지역으로 삼고 있다. 박 연구관은 “공원이 잘 조성된 아파트 단지는 낙엽이 많이 쌓여 유충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브버그가 처음부터 갑자기 나타난 곤충은 아니다. 2018년 인천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수도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출현해 왔다. 그러다 2022년 은평구에서 대량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단순히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요인이 존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연구관은 “기후위기는 곤충 대발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며, “천적의 감소나 서식지 변화 등 다양한 요소를 함께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립생태원이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20년까지 대벌레가 전국에서 18차례나 대발생했으며, 그 외 다양한 곤충들의 대발생 사례도 수없이 많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신승관 교수는 대벌레 방역이 러브버그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는 “러브버그는 느리고 쉽게 잡아먹힐 수 있는 곤충”이라며 “2020~2021년 은평구에서 대벌레 방제를 하면서 러브버그의 천적인 포식성 곤충들까지 함께 사라졌고, 그 결과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져 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신 교수는 러브버그가 살충제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 중이다. 이처럼 단순한 해충 퇴치가 오히려 더 큰 생태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곤충 대발생에 대한 접근 방식은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인 생태계 관리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