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단신] 무대 위로 번지는 온기, 로봇의 사랑과 새내기들의 성장통
비워냄으로써 채워진 10년의 미학, ‘어쩌면 해피엔딩’의 귀환
지난 6월 미국 토니상 6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저력을 증명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다시 서울을 찾았다. 이번 공연은 작품 탄생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대학로 소극장을 벗어나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자리를 옮겨 내년 1월 25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이른바 ‘윌휴 콤비’로 불리는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빚어낸 이 작품은 머지않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보다 더 깊은 감정을 나누는 두 로봇의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번 시즌이 흥미로운 지점은 규모의 확장이 아닌 ‘본질로의 회귀’에 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화려한 미디어 아트와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선보였던 것과 달리, 서울 공연은 오히려 여백의 미를 극대화하는 선택을 했다. 피아노와 현악 4중주, 드럼으로 구성된 6인조 챔버 편성은 무대 위 배우들의 미세한 숨결까지 음악으로 치환하며 감정의 밀도를 높인다. 제작진은 무대가 넓어진 만큼 시각적 장식을 채우기보다, 조명과 영상이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은은한 잔광처럼 머물게 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인물의 내면에 다가가도록 설계했다.
캐스팅 역시 10년의 세월을 아우른다. 초연 멤버인 김재범, 전미도, 고훈정을 필두로 신예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며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2015년 트라이아웃 단계부터 참여해 온 배우 전미도는 “오랜만에 클레어 역으로 무대에 서게 되어 감격스럽다”며 관객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화려한 기술보다는 ‘마음의 실재감’에 집중한 이번 무대는, 효율 중심의 시대에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적 정서와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는다.
대서양 건너 전해진 대학가 무대의 열기, ‘Mean Girls’
한국 무대가 성숙한 감정의 여운을 전한다면,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에서는 풋풋한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 소식이 들려온다. 학생 극단 ‘퍼스트 이어 플레이어스(First Year Players, 이하 FYP)’는 오는 4월 2일부터 샤인 스튜던트 센터에서 뮤지컬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을 무대에 올린다.
1993년 설립된 FYP는 신입생과 편입생들에게 무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지난해 ‘리걸리 블론드’ 공연 당시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 작품은 아프리카에서 홈스쿨링을 하다 미국 고등학교로 전학 온 주인공 케이디가 이른바 ‘플라스틱(The Plastics)’이라 불리는 인기 그룹과 엮이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공동 프로듀서 마리오 에스테브는 이번 작품이 단순한 하이틴 코미디를 넘어, 새로운 환경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생들이 겪는 정체성 고민과 사회적 압박을 투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 실제 학생들의 성장통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다.
무대를 통해 발견하는 ‘우리’라는 공동체
서울과 시러큐스, 공간과 소재는 다르지만 두 공연은 모두 무대를 통해 ‘함께함’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윌휴 콤비가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관객들에게 기적 같은 감사 인사를 전하며 브로드웨이 버전의 한국 상연을 준비 중인 것처럼, FYP 역시 공연 수익금을 지역 극단에 기부하며 예술을 통한 공동체 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은 결국 비슷할 것이다. 그것이 로봇의 서툰 사랑이든, 고등학생들의 치기 어린 성장담이든, 우리는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들을 보며 일상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온기를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