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5월 2026

[시네마 크리틱] 엉성한 리메이크가 놓친 서스펜스의 본질,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던질 서늘한 질문

요즘 극장가를 보고 있노라면 참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소식들이 교차하곤 합니다. 먼저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아쉬운 작품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극한의 서스펜스를 선사할 납치 스릴러’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나온 영화 ‘시스터’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극한은커녕 서스펜스도 없고, 납치라는 물리적 행위만 덩그러니 남은 채 스릴은 완전히 증발해 버렸습니다. 차주영이라는 배우가 가진 고유의 매력은 낭비되었고, 그 자리는 엉성한 폭력으로 채워졌죠.

홍보 단계에서는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훌륭한 뼈대가 되는 원작이 존재합니다. 2009년에 개봉했던 영국 영화 ‘앨리스 크리드의 실종’입니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탄탄한 밀실 스릴러의 교본 같은 작품이죠. 원작은 납치된 여성 한 명과 납치범 남성 두 명이라는 세 사람의 팽팽한 삼각관계를 다룹니다. 그런데 한국판인 ‘시스터’는 여기서 제법 과감한 변주를 시도합니다. 납치범의 성별을 남녀(이수혁, 정지소)로 바꾸고, 심지어 납치범 여성을 피랍자(차주영)의 이복동생으로 설정한 겁니다. 언니를 납치한 동생이라니, 이 변형된 축은 초반 서사에 꽤나 흥미로운 호기심을 불어넣습니다. 동생의 병원비라는 그럴싸한 목적까지 더해지면서 말이죠.

문제는 이 새로운 뼈대를 끝까지 지탱할 뒷심과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데 있습니다. 원작이 세 사람 사이의 애증과 배신, 속고 속이는 치밀한 심리전으로 러닝타임 내내 목을 조여온다면, ‘시스터’는 두 자매가 너무 일찌감치 감정적 동맹을 맺어버리며 스스로 긴장감을 거세해 버립니다. 결국 납치범 남자 혼자 극의 유일한 빌런으로 남게 되는데, 이때부터 영화는 심리 스릴러가 아니라 마치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와 싸우는 생존 액션물처럼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상상력으로 채우지 못한 서사의 구멍을 억지스럽고 자극적인 폭력으로 땜질하려는 시도는 참기 힘든 피로감을 줍니다. 여성을 바닥에 내리꽂고 주먹으로 사정없이 짓이기듯 패는 씬은 과장된 타격음까지 더해져 불쾌감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의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서스펜스가 배가된다는 일차원적인 착각은 이 장르가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심지어 그 화급하다던 동생 병원비라는 납치 동기마저 후반부엔 흐지부지 휘발되어 버리니, 이쯤 되면 한국판만의 재미를 찾기보단 차라리 왓챠나 웨이브를 켜서 원작을 다시 감상하시는 쪽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실망스러운 헛발질이 남긴 씁쓸함 속에서, 다가오는 6월 무척 반갑고도 기대되는 거장의 내한 소식이 극장가에 작은 위안을 던져줍니다. 인물 간의 관계망과 그 심연을 누구보다 치밀하고 따뜻하게 묘사하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신작 ‘상자 속의 양(Sheep in the Box)’ 홍보를 위해 아역 배우 쿠와키 리무와 함께 6월 4일부터 5일까지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번 작품은 죽은 아들과 빼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된 한 일본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SF 드라마입니다. 인간의 조건과 가족의 의미를 끈질기게 탐구해 온 그가 ‘로봇’이라는 낯선 피사체를 통해 또 어떤 묵직하고 철학적인 화두를 던질지 벌써부터 영화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작품은 6월 10일 국내 극장에 정식으로 걸리게 됩니다. 과장된 폭력이나 평면적인 빌런의 존재 없이도, 한 인간(혹은 로봇)을 바라보는 복잡하고 섬세한 시선만으로 얼마나 밀도 높은 긴장과 깊은 여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다가오는 6월, 스크린을 씻어낼 거장의 새로운 질문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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