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흔들리는 美 증시…아랑곳 않는 ‘서학개미’ 쏠림 현상
미국과 이란의 대화가 파행으로 치닫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전면 봉쇄를 지시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국제 유가는 치솟았고 미 증시 선물은 일제히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굵직한 대외 악재와 1470원을 웃도는 고환율 속에서도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사랑은 오히려 뜨거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호르무즈 봉쇄 선언에 국제 유가 요동
최근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되던 미국과 이란 간의 협상이 결렬되자 지정학적 긴장감은 단숨에 최고조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세계 최강인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모든 선박에 대한 봉쇄 절차에 즉각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치는 미 동부시간 기준 월요일 오전 10시를 기해 발효될 예정이지만, 이란 측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오닉스 캐피털의 호르헤 몬테페케 전무는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내 갈등이 전 세계적인 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국면”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9% 가까이 폭등하며 배럴당 104달러 선을 위협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7% 이상 급등하며 104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미 증시 선물 하락세 속 불안한 낙관론
갑작스러운 유가 급등은 곧장 인플레이션 압력과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우려로 이어지며 미 증시를 짓눌렀다. 월요일 미국 주가지수 선물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선물은 장중 최대 580포인트까지 곤두박질친 후 낙폭을 일부 만회하며 약 0.5%(250포인트) 하락한 채 거래를 이어갔다. S&P 500과 나스닥 100 선물 계약 역시 각각 0.6%, 0.7%가량 떨어졌다.
그나마 장 초반의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적 타결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시장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합의된 임시 휴전 상태가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봉쇄 엄포가 실제 무력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외 악재에도 역대급 고공행진 중인 ‘서학개미’
바다 건너 미국 시장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크게 흔들리고 원/달러 환율이 1470~1480원대를 넘나들고 있지만,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들의 미 증시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718억 달러(약 253조 원)를 기록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불과 보름 남짓 전인 지난해 말(1636억 달러)과 비교해도 순식간에 10조 원 이상이 불어난 수치다.
이러한 폭발적인 증가세는 과거 데이터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2년 말 442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보관액은 2024년 말 1121억 달러로 급증하더니, 이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600억 달러(약 88조 원) 가까이 폭증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테슬라가 275억 달러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엔비디아(178억 달러), 알파벳(72억 달러), 팔란티어(63억 달러), 애플(42억 달러)이 톱 5를 형성했다. 투자 성향 또한 매우 공격적이다. QQQ나 SPY 같은 대표적인 지수 추종 ETF뿐만 아니라, 나스닥 100 지수 수익률의 3배를 추종하는 고위험·고배율 상품인 ‘TQQQ’에도 수조 원의 막대한 자금이 몰려있다.
자본 유출에 다급해진 정부, 파격적 유인책 만지작
막대한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들 자금을 다시 국내 증시로 되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유인책을 고심하는 상황이다. 앞서 해외 주식을 매도하고 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는 국내 시장의 상장지수펀드(ETF) 규제를 아예 해외 수준으로 대폭 완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특정 주가 지수나 채권, 통화 등의 수익률을 추종하며 주식처럼 거래되는 ETF의 배수 한도를 현행 2배에서 3배로 풀고, 종목 구성에 대한 제한도 없앤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 방안이 현실화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률을 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가 국내 증시에도 등장할 수 있게 된다. 해외 자산이 국내로 돌아올 경우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는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외환 시장의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계산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미 증시 과열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투기 심리를 한층 조장하고, 시장의 변동성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울 수 있는 3배수 레버리지 상품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다는 날 선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