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인재, 제조업까지 품었다… ‘남유럽 문제아’ 포르투갈의 화려한 부활
포르투갈 북부의 중심도시 포르투(Porto). 도루강을 낀 수려한 자연경관과 달콤한 와인으로 이름난 이곳은 여름휴가 시즌이 훌쩍 지난 9월 중순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 ‘해리포터’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렐루 서점 앞에는 입장하려는 이들이 80m가 넘는 긴 줄을 늘어섰다. 서점 관계자는 “휴가철이 끝나서 그나마 이 정도다. 8월 말까지만 해도 대기 줄이 두세 배는 더 길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수도 리스본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명절 연휴 직전 방문한 리스본 시내는 이른바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이라는 단어가 체감될 정도로 인파가 넘쳐났다. 중심가인 아우구스타 거리는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웠고, 눈에 띄는 식당마다 만석이었다. 현지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주앙(39)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입었던 막대한 손실을 작년에 이미 다 만회했다”며 “경기가 하루가 다르게 살아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전했다.
최근 짙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유럽 경제에서 포르투갈은 단연 돋보이는 예외적 ‘우등생’이다. 2021년 5.7%, 2022년 6.8%라는 놀라운 고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이듬해에도 2.3% 성장하며 순항했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EU)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각각 6.0%, 3.5%, 0.5%에 그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성적표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묶어 ‘PIGS의 부활’이라는 조명 아래 포르투갈을 연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재정 위기의 늪을 벗어나다
포르투갈의 현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곧이어 닥친 유럽 재정위기 시절을 되짚어봐야 한다. 당시 포르투갈은 감당할 수 없는 재정 적자와 공공 부채로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2009년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9.8%까지 치솟았고, 2012년 국가 부채는 GDP 대비 129%에 달했다. ‘남유럽의 문제아’라는 꼬리표와 함께 PIGS로 묶여 조롱받던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도 사정은 엇비슷했다. 결국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주도한 EU의 구제금융 프로그램 산하로 들어가며, 이들 국가는 민관을 가리지 않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했다. 선심성 복지 예산은 가차 없이 삭감됐고, 유연한 고용과 해고를 골자로 하는 노동 개혁이 뒤따랐다.
당연하게도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저항이 일었다. 하지만 혹독한 체질 개선의 대가는 분명한 경제 지표로 돌아왔다. 만성적인 0~1%대 저성장에 시달리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유럽 경제 대국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괄목할 만한 반등을 이뤄낸 것이다. 포르투갈을 비롯해 그리스 역시 2022년 5.9% 등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고 실업률은 눈에 띄게 안정화됐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안정적인 EU 회원국이라는 지위, 유연해진 노동시장은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리스본대학교 대학원생 카를라(25) 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기들 모두 어떻게든 해외로 취업하려고 기를 썼지만, 지금은 국내 취업 문이 확실히 넓어졌다”고 말했다.
물론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관광 수요가 견조한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사실이다. 포르투갈 전체 GDP의 15%가량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은 매년 기록적인 방문객 수를 갱신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관광업을 넘어선 근본적 변화… 자본과 첨단 인재의 집결지
단순히 관광업의 부활만으로 작금의 경제 회복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리타 마르케스 전 관광·상무 장관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관광업의 역할이 컸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경제 기저에 깔린 더 근본적인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진행된 체질 개선과 그로 인해 파생된 경쟁 우위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가장 직관적인 증거는 해외 자본의 유입이다.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산업, 그리고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에 막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향해 꾸준히 회복 중인 투자 규모는 포르투갈이 ‘투자하기 매력적인 국가’로 완벽히 탈바꿈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포르투갈 내 기업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 영주권을 부여했던 ‘골든 비자’ 제도 역시 엄청난 자금을 끌어모으며 든든한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
자본이 돌기 시작하자 글로벌 인재들도 자연스레 포르투갈로 모여들고 있다. 현재 포르투갈에서 활동 중인 기술 스타트업은 수천 개에 달하며, 매년 세계적인 규모의 스타트업 행사인 ‘웹 서밋’이 열린다. 흥미로운 점은 실리콘밸리 등지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출신의 IT·바이오 핵심 인재들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와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번역 기업 언바벨, 클라우드 콜센터 플랫폼 토크데스크, AI 금융 사기 방지 솔루션 피드자이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마토지뉴스에 자리 잡은 헬스케어 테크 기업 ‘녹(Knok)’ 역시 60여 명의 다국적 인재들이 모여 5G 기반 원격진료 서비스를 전 세계 1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통의 제조업 강국 이탈리아를 꺾다… 자동차 산업의 도약
포르투갈의 부활은 서비스업과 첨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산업의 뼈대인 제조업, 그중에서도 자동차 산업에서 포르투갈은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2025년 기준 포르투갈은 승용차와 상용차, 대형 차량을 모두 합쳐 34만 1,000대 이상의 차량을 생산하며 이탈리아의 총생산량을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단숨에 유럽 내 자동차 생산국 순위 9위로 도약했다. 내수 침체와 신모델 출시 지연으로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포르투갈 공장들의 놀라운 경쟁력과 회복 탄력성을 증명하는 결과다.
이러한 제조업의 성공은 철저히 수출 주도형 모델에 기반을 둔다. 포르투갈에서 조립된 차량의 97.8%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수출되며, 이는 글로벌 가치 사슬 내에서 포르투갈이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수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올해 3월 포르투갈 내 신차 등록 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1% 증가했으며, 이 중 전기차 등 친환경 전동화 차량의 비중이 74.3%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 상승이 화석 연료의 대체재 전환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 시장의 전통적 강자인 푸조, 메르세데스-벤츠, BMW가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하이브리드 모델을 앞세운 중국 브랜드(MG, BYD 등)의 시장 점유율이 맹렬하게 치솟고 있다. 가중되는 물류비용 부담과 거세지는 중국발 경쟁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포르투갈 경제의 다음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