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키티의 그늘을 벗어난 산리오, 다변화된 IP와 ‘슬로우 크래프트’로 글로벌 질주
일본의 유명 캐릭터 기업 산리오(Sanrio)가 예상을 뒤엎고 사상 최대의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과거 헬로키티라는 단일 캐릭터에 의존하던 수익 구조에서 완전히 탈피해, 다채로운 캐릭터 라인업을 고루 부각하는 마케팅 전략이 전 세계 주요 시장에서 제대로 적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각광받는 아날로그 취미 활동까지 라이선스 영역을 넓히며 팬덤의 일상에 더욱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해외 시장이 견인한 역대급 어닝 서프라이즈
산리오가 발표한 2026 회계연도 1분기(2025년 4~6월)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놀라운 성장세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9.1%나 뛴 430억 엔(약 4063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201억 엔)과 순이익(141억 엔) 역시 각각 88%, 37.8% 급증하며 시장의 기존 전망치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러한 호실적의 일등 공신은 단연 해외 사업부다. 전체 영업이익의 약 75%가 해외 시장에서 창출됐다. 특히 유럽 지역의 매출액이 196.2%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였고, 아시아(83.7%)와 미주(27.6%) 시장에서도 뚜렷한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영업이익 역시 유럽(450%), 아시아(109%), 미주(16.8%) 전역에서 크게 늘었다. 한국의 경우 8억 6200만 엔의 매출을 올려 전년 동기(9억 5400만 엔) 대비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년 전(5억 9700만 엔)과 비교하면 여전히 괄목할 만한 수준의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채로워진 캐릭터 라인업과 맞춤형 현지화 전략
산리오의 가파른 질주를 지탱하는 뼈대는 한층 탄탄해진 캐릭터 포트폴리오다. 현재 글로벌 전체 매출에서 헬로키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 수준이다. 나머지 65%의 수익을 다른 산리오 캐릭터들이 담당할 정도로 사업 구조가 다변화됐다. 실제로 올해 치러진 글로벌 팬 투표 ‘산리오 캐릭터 대상’에서는 폼폼푸린, 시나모롤, 포차코, 쿠로미가 나란히 1위부터 4위를 휩쓸며 헬로키티를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 6위부터 10위권에도 마이멜로디, 리틀트윈스타, 한교동, 턱시도 샘, 아히루노페클 등 다양한 라인업이 포진해 팬심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지역별 소비자의 입맛을 맞춘 현지화 라이선스 사업도 활발히 전개 중이다. 아시아 매출의 핵심인 중국 시장에서는 알리바바 그룹 산하의 알리피시(Alifish)와 맺은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이 큰 수익을 내고 있다. 쿠로미와 시나모롤의 현지 인기가 치솟으면서 신규 라이선스 계약 건수와 사용자 수 모두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에서도 CJ올리브영, 스파오, 이디야커피 등 여러 브랜드와 손잡고 다채로운 협업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북미 지역은 여전히 헬로키티 관련 제품이 매출의 60%를 차지하며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헬로키티 아일랜드 어드벤처’ 게임의 연이은 성공과 의류, 완구 카테고리의 호조를 바탕으로 향후 1~2년 안에는 쿠로미와 마이멜로디 역시 북미권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에서 오프라인 ‘슬로우 크래프트’까지
지식재산권(IP)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콘텐츠 확장 전략도 멈추지 않는다. 산리오가 지난달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이멜로디 & 쿠로미’는 공개 단 일주일 만에 비영어권 글로벌 순위 2위에 안착했다. 1974년 단순한 일러스트로 출발했던 헬로키티가 반세기를 거치며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입은 패밀리 캐릭터들과 함께 전 세계 스크린을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에 피로감을 느끼는 키덜트와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를 겨냥해 오프라인 기반의 ‘슬로우 크래프트(slow crafting)’ 시장까지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산리오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팬덤의 수요에 발맞춰 수공예 전문 브랜드 크래프트 버디(Craft Buddy)와 손잡고 자사 캐릭터들을 입힌 ‘크리스탈 아트’ 컬렉션을 4월부터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복잡한 도구나 끈적이는 접착제 없이 단순한 작업에 몰입하며 스트레스를 낮추는 수공예 트렌드를 정조준한 기획이다.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에서 벗어나 팬들이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며 평화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번 컬렉션은 총 3단계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출시된다. 현재 구매가 가능한 1단계 제품은 102개의 스티커와 20페이지 분량의 앨범이 포함된 스타터 팩, 그리고 세 장의 스티커가 무작위로 들어있는 블라인드 백으로 알차게 구성됐다. 다가오는 2단계에서는 가방 장식용 챰과 크리스탈 아트 스크롤이 추가된다. 마지막 3단계에 접어들면 생일 카드를 비롯해 헬로키티 및 쿠로미 테마의 비밀 일기장, 대규모 메가 액티비티 세트 등 소장 가치를 극대화한 다채로운 굿즈들이 팬들을 찾아갈 예정이다.